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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소녀 그레타의 절규를 통해 태양광의 미래를 본다.
임안수 조회수:132 180.230.99.132
2019-07-15 02:42:34

16세 소녀 그레타의 절규를 통해 태양광의 미래를 본다.

 

    유럽의 태양광 선진국 스웨덴에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라는 한 소녀가 있다. 2003년생이니 올해 만 16세다. 지난 3월, 그레타는 201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만일 그레타가 노벨상을 받게 된다면 2014년 17세의 나이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말랄라 유사프자이 (Malala Yousafzai)의 기록을 뛰어 넘는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 그렇다면 이 어린 소녀 그레타가 어떻게 하여 노벨상 후보가 되었을까? 소녀의 궤적을 쫓다보면 해답이 풀린다.

    그레타는 초등학생이던 8세 때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기후의 위기에 대해 처음으로 배웠다. 그리고 소녀는 전면적인 투쟁에 나섰다.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직감한 그는 부모나 친구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들 “맞다” 하면서도 아무도 ‘행동’하지는 않았다. 소녀는 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 교장선생님에게 노골적인 반기를 들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런 그레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3년쯤에 이르러 그레타는 말문을 닫았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부모를 포함하여 선생님들까지… 온 세상의 사람들이 위선자였다. 세상이 미워졌다. 기후위기만 골똘히 생각했다. 의사는 이를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방관만하며 지구의 죽음을 기다릴 순 없었다. 그러던 차에 평균 16도 내외였던 스웨덴의 8월이 2018년 평균 34도 폭염으로 들끓으면서 소녀는 분연히 일어섰다. 15세의 그레타는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라는 팻말을 들고 스톡홀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학기 중엔 매주 금요일 등교를 거부하고 의사당에 갔다.

    불과 1년도 되기 전에 소녀의 행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제 세계의 160여 나라 수백만 청소년들이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구호 아래 그레타와 연대한다. 그레타가 직접 비판한 정치의 무능함과 무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는 나라마다 사회적 공론을 키웠다. 유엔은 물론 세계의 정치·경제 거물급 모임인 다보스포럼, 또 유럽의회조차 그레타를 주목하고 연설까지 청했다. 2019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선 녹색당 돌풍도 불었다. ‘그레타 효과’였다. 보수 세력이 그를 폄하하려고 강조한 ‘자폐증’은 맥락상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아스퍼거 증후군’은 위선적 세상에 대한 그의 당찬 대응이었던 셈이 된 것이었다.

    연단에 선 그레타는 청중을 향해 근엄하게 꾸짖는다.

    『우리에게는 이제 변명거리가 고갈된 상태입니다. 주어진 시간은 절대로 부족합니다. 저는 인류에게 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직접 나섰습니다. 더 이상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탄소배출 중단을 구걸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늘 우리를 무시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탄소배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 때문이지요. 이제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분명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시스템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제가 부르짖는 미래의 후세대들은 아직 행동할 시간이 있었던 그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말할 것입니까? 여러분 누구나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 그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가들은 현실적 지지도의 상실이 두려워 녹색성장이나 지속가능 발전만 외치는 중이지요. 거대한 산림파괴, 유독성 대기오염, 사라지는 곤충과 야생동물, 산성화하는 해양…. 인류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돌이킬 수 없는 사태들. 이제 당신들은 위기와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소리치고 마구 날뛰는 고통이 아니라 노트르담 화재 때처럼 차분하게 지구를 구하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막연한 희망보다 중요한 게 행동입니다. 행동을 시작하면 희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행동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막연함이 아니라 제도적인 탄소배출 저감의 노력을 혁명적으로 일으켜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살 길입니다.”

    어찌 16세의 소녀가 부르짖은 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이고 사실이다. 이런 소녀의 절규를 듣고 부끄럽지만 본인은 태양광의 미래를 읽는다. 탄소는 우리들의 미래, 지구의 미래를 멍들게 하는 중이다. 누군가는 이 병원균을 추방해야 한다. 그 전사가 바로 태양광과 풍력과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아니겠는가. 그중에서도 태양광은 가장 접근하기 편하고 가장 풍부하고 가장 확실한 에너지원이다. 태양광을 가지고 미래를 예단하는 일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현재의 태양광 시장을 가지고 사업을 논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SMP와 REC가 70원 안팎에서 머뭇거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태양광은 한번 투자하면 최소 25년을 유지하는 장기적인 사업이다. 현재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단견(短見)의 사고방식일 것이다. 최근 이천에 곤충사육사형 태양광을 분양하는 중인데, 형식적 곤충사육사가 아닌 실제 사육형 곤충사육사이다. 굼벵이 사육사를 제대로 시공한 후 이미 사육원까지 모집하여 다각도로 사업진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준공이 완료되면 임대료를 지불하고 굼벵이 사육과 제품을 생산한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분양을 받는 사람은 태양광 수익과 곤충사 임대수익을 중복하여 형수할 수 있다. 이럴 때 쓰는 고사성어가 일전쌍조(一箭雙鵰)이다. 화살 한 개로 두 마리의 독수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광시장의 불황을 극복하는 지혜로 삼을 만하여 문제를 제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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